쉬지 않고 이어지는 낯선 말소리를 상상해 보세요. 단어 사이에 틈이 없다면, 어디까지가 한 단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강아지에게도 이런 소리를 들려준 연구가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은 말을 이루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소리입니다. 자음의 순서가 반복될 때 개의 뇌 반응도 그 소리 묶음의 리듬에 더 강하게 맞춰졌습니다. 이 연구가 살핀 질문은 ‘무슨 뜻일까?’보다 앞선 ‘어디까지가 한 묶음일까?’였습니다.
2026년 9월 24일 Science 에 공개된 이 연구는 사람 20명과 반려견 20마리의 뇌 반응을 비교했습니다. 개에게 한글 글자를 보여 준 실험은 아니며, 이 글의 자음과 모음도 글자가 아닌 말소리를 뜻합니다.
쉼 없는 소리 속에 넣은 세 가지 규칙
글에는 띄어쓰기가 있습니다. 이번 실험에서 들려준 소리에는 단어 사이를 알려 주는 쉼이나 다른 소리 단서가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자음과 모음이 번갈아 나오는 소리를 이어 붙인 뒤, 어떤 소리가 반복되도록 할지를 바꿨습니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세 음절에 걸친 자음의 순서가 되풀이됐습니다. 음절은 한 번에 발음되는 작은 소리 덩어리입니다. 3음절은 그런 덩어리 세 개를 뜻합니다. 자음 사이의 모음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똑같은 음절 세 개를 그대로 반복한 소리와는 다릅니다.
두 번째 조건은 모음의 순서를 반복하고 자음은 달라질 수 있게 했습니다. 세 번째에서는 음절이 반복 규칙 없이 무작위로 이어졌습니다. 세 조건의 차이는 ‘같은 묶음이 돌아왔다는 것을 어떤 소리로 알 수 있나?’에 있습니다.
| 들려준 소리 | 세 음절 묶음에서 되풀이되는 것 | 달라질 수 있는 것 |
|---|---|---|
| 자음에 규칙을 둔 소리 | 자음이 나오는 순서 | 그 사이의 모음 |
| 모음에 규칙을 둔 소리 | 모음이 나오는 순서 | 그 사이의 자음 |
| 무작위 소리 | 묶음을 만드는 반복 규칙이 없음 | 음절이 무작위로 이어짐 |

자음 하나가 계속 나오는 실험으로 생각하면 이 차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반복되는 것은 세 음절에 걸친 소리의 순서입니다. 그 순서가 되돌아오면 어디서 새 묶음이 시작되는지 찾을 단서가 생깁니다. 이런 묶음의 시작과 끝을 단어의 경계라고 부릅니다.

연구진은 반복되는 패턴을 ‘단어 골격’으로 설명했습니다. 말의 뜻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소리로 단어 같은 묶음을 만든 것입니다. 위 표도 세 조건의 규칙을 보여 주며, 실제 실험에서 쓴 음절을 재현한 표는 아닙니다.
많은 인간 언어에서 자음은 단어를 구별하는 데 쓰이는 정보를 담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개도 자음의 반복을 단서로 삼을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소리를 들을 때 나타나는 뇌 반응을 기록했습니다.
사람과 개의 뇌가 함께 따라간 리듬
검사에는 EEG, 즉 뇌파 검사를 썼습니다. 전기 신호를 받아내는 작은 장치인 전극을 머리 표면에 붙여 뇌의 전기 활동을 기록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기록하는 전기 활동을 뇌파라고 합니다.
소리 묶음이 일정하게 되풀이되면 뇌 반응도 그 리듬에 맞춰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동기화라고 부릅니다. 연구진은 세 소리 조건에서 뇌 반응이 소리 묶음의 리듬에 얼마나 강하게 맞춰지는지 비교했습니다.

자음의 순서가 반복되는 조건에서는 사람과 개 모두 모음 조건이나 무작위 소리 조건보다 소리 묶음의 리듬을 더 강하게 따라갔습니다. 뇌 반응의 동기화가 더 강했던 것입니다. 묶음을 찾을 때 모음보다 자음 패턴을 더 강한 단서로 쓰는 이 경향을 자음 편향이라고 합니다. 자음이 모든 언어와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뇌 반응이 나타난 시점에도 눈에 띄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자음 조건에서 소리 묶음이 시작하고 약 400ms, 즉 약 0.4초 뒤에 사람과 개 모두 별도의 뇌파 변화를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변화도 단어의 경계를 찾는다는 설명을 뒷받침한다고 봤습니다. 이 숫자는 뇌 반응이 나타난 시점이며, 0.4초 만에 단어의 뜻을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모음 조건에서는 두 종의 뇌 반응이 달랐습니다. 사람의 뇌는 모음의 순서로 만든 묶음의 리듬도 따라갔습니다. 그 반응은 자음의 순서가 반복될 때보다 약했습니다. 개에게서는 이번 실험에서 모음 묶음의 리듬을 따라가는 반응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모음 소리를 듣는 것과 그 반복으로 묶음을 찾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따라서 이 실험에서 모음 묶음을 따라가는 반응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개가 모음을 못 듣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모음 패턴을 처리할 수 없다고 결론 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비슷하다’는 표현을 읽을 때는 이 차이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논문 초록에 따르면 사람과 개 모두 자음으로 만든 소리 묶음을 더 강하게 추적했습니다. 연구를 수행한 대학이 공개한 연구진 설명에서는 사람이 모음 묶음도 추적했지만 개에서는 그 반응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차이까지 알 수 있습니다. 두 자료를 함께 읽어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은 특정 소리 규칙에 대한 뇌 반응입니다. 언어능력 전체가 같다는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 집에서 산 경험이 꼭 필요했을까?
사람과 함께 사는 개에게서 자음 편향이 나타난다면, 어릴 때부터 집에서 사람 말을 들은 경험이 필요했을까요?
생후 첫 3개월을 가정의 반려견으로 보낸 개뿐 아니라 거리나 보호소에서 보낸 개에게서도 비슷하게 강한 자음 편향이 나타났습니다. 첫 3개월을 집에서 살아야만 이런 반응이 생긴다는 설명은 이번 관찰과 맞지 않습니다.
거리나 보호소에서 지냈다고 사람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개들은 현재 사람 말을 접하는 반려견입니다. 어릴 때 생활한 환경과 그 뒤의 경험이 각각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이 비교만으로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사회화라고 합니다. 이번 소리 실험으로 사회화나 양육환경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개에게도 자음 편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소리 묶음을 찾으려면 말을 하는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 할까요? 다만 개에게서 이 경향이 관찰됐다는 사실과 그 경향이 생긴 원인을 알아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개 한 마리가 살면서 사람 말을 접한 경험과 가축화는 서로 다른 설명입니다. 가축화는 야생 동물이 오랜 세대에 걸쳐 사람과 함께 살도록 변해 온 과정을 뜻합니다. 자음 편향이 말에 노출된 경험에서 비롯됐는지, 개가 사람과 살아온 오랜 과정과 관련 있는지는 이 자료만으로 가려낼 수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소리 처리 능력에서 자음 편향이 비롯됐을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오래됐다는 말은 개 한 마리의 나이가 아니라, 생물이 여러 세대에 걸쳐 변해 온 진화 과정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듣고 본 것을 기억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인지능력이라고 합니다. 자음 편향이 이런 인지능력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실제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번 관찰만으로 가려낼 수 없습니다.
소리 묶음을 찾는 것과 뜻을 아는 것
뇌파는 반복되는 소리에 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여 줍니다. 개가 단어의 뜻을 알았거나 문장을 이해해 지시대로 움직였다는 결과와는 다릅니다. ‘여기서 소리가 한 묶음으로 반복된다’는 단서를 찾았다고 해서 ‘이 말은 이런 뜻이다’라는 답까지 얻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실험에서는 특정 자음이 들어간 명령어가 더 잘 통하는지나 새 훈련법이 효과가 있는지를 직접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어 명령어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는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개가 단어 뜻을 이해하는지 살핀 다른 연구들까지 이 실험 하나로 부정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이 글은 공개된 논문 초록과 연구를 수행한 대학이 공개한 연구진의 설명을 대조해 정리했습니다. 같은 연구를 다룬 두 문서이며, 서로 다른 두 실험에서 결과가 반복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논문 전문과 보충자료에는 접근하지 못해 실제 자극 음절과 참여자·개의 세부 구성, 통계값과 반응 차이의 크기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공개 설명에 나온 20마리의 결과로 모든 개나 개별 반려견의 능력을 점수처럼 매길 수는 없습니다.

강아지는 사람 말에서 단어를 어떻게 찾아낼까요? 이번 연구에서 확인한 단서는 반복되는 자음의 순서입니다. 자음의 순서로 만든 소리 묶음이 되풀이될 때 개의 뇌 반응도 그 리듬에 더 강하게 맞춰졌습니다. 그 묶음의 뜻까지 알았는지는 별도의 질문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