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9월 23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전국에 방송되는 연설에서 자신의 개가 화났다고 말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향한 공격은 참겠지만, 작은 개 팔라는 그러지 못한다는 농담이었습니다. 검은 스코티시 테리어의 이름이 선거 연설 한가운데 등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여행 중 팔라를 섬에 두고 왔고, 데려오려고 군함을 보내 막대한 세금을 썼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 도서관은 이 이야기를 사실이 아닌 소문으로 설명합니다. 루스벨트는 반박에 유머를 더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팔라를 등장시켰습니다. 백악관의 일상과 여러 여행을 함께하던 개가 어떻게 그만큼 유명해졌을까요?
‘빅 보이’가 팔라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팔라는 1940년 4월 7일 태어났습니다. 처음 이름은 ‘빅 보이’였습니다. 켈로그 부인에게서 루스벨트의 먼 친척이자 가까운 지인이었던 마거릿 ‘데이지’ 서클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왔습니다. 루스벨트는 스코틀랜드 조상의 이름을 따 ‘머리 더 아웃로 오브 팔라힐(Murray the Outlaw of Falahill)’이라는 긴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상에서는 뒷부분을 줄여 팔라라고 불렀습니다.
팔라가 백악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행동과 재주를 가르친 사람은 데이지였습니다. 앉거나 구르는 동작을 배우고 사람들과 지내는 데 익숙해지는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데이지는 이후에도 돌봄을 나눠 맡았습니다. 대통령이 개를 데려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면 팔라를 맡았고, 함께 여행할 때도 산책을 시키며 챙겼습니다.
1940년 11월 10일 백악관에 온 팔라의 잠자리는 대통령 침대 발치에 놓인 특별한 의자였습니다. 낮에는 백악관 직원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이 음식을 자꾸 더 주자 루스벨트가 추가 급식을 제한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유명한 대통령의 개에게도 식사를 조절하고 생활을 챙겨 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에는 팔라가 쓰던 밥그릇과 고무공, 속을 채운 양말 장난감이 보존돼 있습니다. 금속 표찰에는 팔라의 이름과 ‘The White House’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통령의 집무실 사진에 등장하는 밥그릇과 장난감은 팔라가 큰 역사적 사건 곁에서 자기 일상을 살던 개였음을 보여 줍니다.
사진과 편지 속 ‘대통령의 개’
팔라는 자동차와 기차, 배를 타고 루스벨트를 자주 따라다녔습니다. 1941년 8월에는 뉴펀들랜드에서 열린 대서양헌장 회담에도 동행했습니다. 루스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전쟁과 전후 질서를 논의한 회담입니다. 당시 단체 사진을 보면 제복을 입은 장교들과 두 지도자 아래쪽에 작은 검은 개가 앉아 있습니다.
대통령이 이동하는 곳에 팔라도 자주 나타나다 보니 신문과 잡지에 사진이 실렸습니다. 1942년에는 데이지가 쓴 《팔라의 진짜 이야기(The True Story of Fala)》가 나왔고, 영화사 MGM은 팔라의 백악관 생활과 하이드파크 생활을 다룬 짧은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말과 정책뿐 아니라 곁에 있는 개의 얼굴과 이름에도 익숙해졌습니다.
팔라 앞으로 온 수천 통의 편지는 지금도 대통령 도서관에 남아 있습니다. 일부는 영국 민간인을 돕기 위해 기금을 모으던 반려견 보호자 단체 ‘Barkers for Britain’과 관련된 편지였습니다. 팔라는 이 단체의 명예회장이기도 했습니다. 개에게 붙인 직함이었지만, 사람들이 팔라의 이름을 통해 전쟁 중의 모금과 관심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편지와 표찰에 남았습니다.
1944년 여름, 실제로 함께한 태평양 항해
루스벨트가 네 번째 대통령 선거에 나선 1944년 여름, 팔라는 순양함 USS 볼티모어호를 타고 태평양 여행에 동행했습니다. 루스벨트는 하와이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만나 전쟁 수행을 논의했습니다. 귀환길에는 알래스카에서 태평양 쪽으로 이어진 알류샨 열도를 거쳤습니다.
대통령 도서관이 소개한 승조원과 수행원의 회고에는 배 안에서 생긴 작은 소동도 나옵니다. 선원들이 집에 보낼 기념품으로 팔라의 털을 조금씩 잘랐다는 것입니다. 팔라를 찾던 담당자가 개를 발견했을 때에는 털 여러 군데가 잘려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선원들에게 애정 표현을 쓰다듬는 정도로 제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유명한 개가 사람들 사이를 다닐 때에는 지나친 관심으로부터 챙겨 주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함께 탄 배가 ‘개를 구하러 보낸 군함’이 되다
대통령이 본토로 돌아온 뒤 다른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팔라를 알류샨 열도의 어느 섬에 두고 와서, 개를 데려오려고 구축함을 돌려보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구축함은 전투와 호위 임무를 맡는 군함입니다. 전쟁 중 그런 배를 대통령 개인의 개를 위해 움직이고 큰돈을 썼다는 주장은 공금 낭비를 겨냥한 정치적 공격이 됐습니다.
미네소타의 공화당 하원의원 해럴드 크누트슨은 하원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음 날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존 매코맥은 윌리엄 리히 제독의 말을 인용해 반박했습니다. 팔라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꾸며 낸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9월 12일에는 비행기를 보냈다는 주장도 나왔고, 해군과 백악관이 이를 부인했습니다.
처음 누가 이 소문을 만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크누트슨이 의회에서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 최초 유포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볼티모어호 안에서 팔라를 잠시 찾았다는 회고와, 섬에 남겨진 개를 데려오려고 군함을 보냈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확인되는 항해에 근거 없는 구조 이야기가 붙으면서 팔라의 이름은 몇 주 동안 정치 공방에 오르내렸습니다.
라디오에서 ‘화난 팔라’를 등장시킨 까닭
루스벨트는 1944년 9월 23일 워싱턴 D.C.의 팀스터스 노동조합 만찬에서 연설했습니다. 트럭 운전사와 운송·창고 노동자 등이 속한 조합의 행사였고, 연설은 전국 라디오로 생중계됐습니다. 팔라 이야기는 만찬장 안의 청중을 넘어 미국 각지의 청취자에게 전달됐습니다.
오늘날 ‘팔라 연설’로 기억되지만, 전문을 읽으면 대부분은 노동자의 전쟁 물자 생산과 뉴딜 정책, 선거 공방, 전후의 평화와 일자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팔라 이야기는 그 긴 연설 가운데 자신과 가족에게 향한 공격을 거론하는 대목에 들어 있습니다.
루스벨트가 꺼낸 핵심은 짧았습니다. 자신과 가족은 공격을 괘념하지 않지만, “팔라는 화가 났습니다.” 이어 팔라가 스코티시 테리어라는 점을 이용해, 거액의 세금을 썼다는 말을 들은 팔라의 ‘스코틀랜드의 마음’이 격분했다고 농담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은 검소하다는 당시의 통념을 빌린 표현입니다.
연설 속 비용도 이삼백만 달러, 팔백만 달러, 이천만 달러로 커집니다. 실제 지출 내역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소문 속 금액을 과장해 되받아친 대목입니다. 루스벨트는 자신을 향한 허위 주장은 익숙하지만 자기 개에 관한 비방에는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장면의 팔라는 사람이 만든 소문을 이해하고 항의하는 등장인물입니다. 대통령이 개에게 사람의 말과 감정을 빌려준 ‘의인화’입니다. 이미 사진과 영화로 알려진 반려견을 내세우니 복잡한 정치 공방도 청취자가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국가 돈을 낭비한 대통령’이라는 공격에 ‘황당한 소문에 화가 난 작은 개’의 장면으로 응수한 셈입니다.
대통령 도서관은 이 연설을 선거운동의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합니다. 루스벨트는 그해 토머스 듀이를 이기고 네 번째로 당선됐습니다. 다만 그 결과를 팔라의 등장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연설이 보여 주는 것은 대중에게 친숙한 반려견의 이미지가 선거 공방에서 어떻게 활용됐는지입니다. 팔라 자신이 정치적 판단을 하거나 견종 전체가 특별한 성격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연설 뒤에도 계속된 팔라의 생활
루스벨트는 1945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통령 곁에서 지내던 팔라의 생활도 바뀌었습니다. 데이지가 잠시 팔라를 맡았고, 이후 엘리너 루스벨트에게 보내져 뉴욕주 하이드파크의 발킬에서 살았습니다. 팔라를 처음 가르친 사람과 대통령의 아내가 돌봄을 이어 간 것입니다.
대통령 도서관의 팔라 전기는 발킬에서 달리고 놀며 지낸 모습을 전합니다. 나중에는 팔라의 손자인 타마스 맥팔라도 함께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연설의 유명한 대목을 기억하는 동안에도, 실제 팔라는 새로운 생활 공간과 곁의 사람들 속에서 나이를 먹었습니다.
팔라는 1952년 4월 5일 죽었습니다. 열두 번째 생일이 됐을 4월 7일, 루스벨트의 묘 가까이에 있는 장미정원의 해시계 근처에 묻혔습니다. 대통령과 같은 무덤에 묻힌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 곁에 나란히 남은 작은 동상
워싱턴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기념공간에는 대통령과 팔라의 청동상이 나란히 있습니다. 전쟁 시기를 다루는 세 번째 공간에 놓였으며 두 동상 모두 조각가 닐 에스터른의 작품입니다. 대통령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에 함께 살던 개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팔라는 여행에 함께 다닌 덕분에 유명해졌고, 유명했기 때문에 정치적 소문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루스벨트는 그 친숙함을 연설의 유머로 활용했습니다. 한편 밥그릇과 장난감, 데이지와 엘리너의 돌봄 기록에는 정치 연설 밖의 팔라가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의 이름 옆에 놓인 개의 이름을 읽을 때, 함께 여행하고 먹고 쉬며 보낸 시간도 같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연설과 실제 기록 더 보기
-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팔라 전기 — 백악관 입주, 여행, 엘리너와의 생활, 사망과 매장
-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데이지 서클리 — 팔라의 훈련과 일상 돌봄, 대통령 사망 뒤 돌봄의 이동
- 대통령 도서관 큐레이터의 팔라 소장품 해설 — 밥그릇·장난감·표찰·사진, 팬 편지와 연설 음성
- 대통령 도서관, 1944년 항해와 군함 소문 — 볼티모어호 회고와 당시 의회의 주장·반박
- 1944년 9월 23일 연설 전문 — 팔라가 등장한 실제 문장과 연설 전체의 맥락
-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대통령 전기 — 1944년 선거와 1945년 사망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루스벨트와 팔라 동상 — 실제 동상의 모습과 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