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번호 81A가 주디라는 이름 옆에 남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갇힌 포인터 주디의 포로 번호입니다.
영국 공군 소속 프랭크 윌리엄스는 주디를 포로로 등록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죽음의 위협에서 지키고 먹을 것을 배급받을 수 있게 하려던 시도였으며, 그 설득으로 주디에게 번호가 생겼습니다.
주디를 몰래 배에 태우고 숨겨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나누고 이동할 때마다 데려간 사람들의 돌봄도 필요했습니다.
함정에서 지내다 수용소로
주디는 1936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흰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포인터였고, 그해 말 영국 해군 함정 그냇의 마스코트가 됐습니다. 여기서 마스코트는 승조원들과 함께 지내며 배를 대표하던 동물을 뜻합니다. 배의 정육 담당 승조원이 주디를 돌봤습니다.
1939년 중반에는 승조원들과 함께 다른 함정 그라스호퍼로 옮겼습니다. 1942년 철수 중 이 배가 일본군 항공기의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주디와 사람들은 섬에 고립됐습니다.
그곳에서 주디가 모래를 파 마실 물을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영국 동물복지단체 PDSA의 생애 소개와 영국 국방부가 인용한 생존자의 후대 회고에 남은 일로, 배에서 보살핌을 받던 주디가 난파한 사람들의 생존을 도운 이야기입니다.
국립기록원은 주디가 1942년 3월 18일 포로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함정의 사람들과 지내던 개도 수용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프랭크가 나눈 쌀과 포로 등록
주디는 1942년 8월 수마트라 메단의 수용소에서 프랭크 윌리엄스를 만났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포로 생활에서도 프랭크는 자신에게 돌아온 쌀 배급을 주디와 나누며 챙겼습니다.
프랭크는 주디를 먹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포로로 등록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국립기록원이 공개한 1946년 수훈 문서의 전사에는 그가 주디를 함정의 공식 마스코트라고 설명하며 등록을 요청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전사는 문서 내용을 글로 옮긴 기록입니다. 전쟁 뒤 공로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남긴 설명이며, 당시 일본군의 포로 등록부 자체는 아닙니다.
국립기록원 소개에 남은 번호는 ‘81A Gloegoer Medan’입니다. 주디를 죽음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배급 대상에 넣으려는 등록이었지만 번호가 생겼다고 수용소의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언제 등록됐는지는 자료의 설명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국립기록원은 메단 수용소 생활에서 등록을 다루지만 날짜를 적지 않았습니다. PDSA와 영국 국방부는 1944년 수송선 침몰 뒤 육지에서 전 메단 수용소장이 등록을 명령했다고 설명합니다.
두 설명이 각각 첫 등록과 재등록을 가리킨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프랭크를 만난 1942년 8월도 등록일로 단정할 수 없어, 번호의 보호 목적과 정확한 날짜는 구별해야 합니다.
다시 침몰한 배, 이어진 포로 생활
1944년 포로들을 옮길 때 프랭크는 주디를 자루에 숨겨 수송선에 태웠습니다. 하루기쿠 마루로, 반 바에르베이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배는 1944년 6월 26일 침몰했습니다. 1942년 그라스호퍼 침몰 뒤 섬에서 물을 찾았던 일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침몰 원인은 기관별 설명이 다릅니다. 국립기록원과 호주 전쟁기념관은 어뢰 공격으로, PDSA는 공습으로 설명합니다. 배의 이름과 침몰일은 확인되지만 여기서는 공격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주디가 물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무 조각을 밀어 주어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국 국방부가 인용한 생존자의 후대 회고와 PDSA 생애 소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디의 행동을 전하는 기록이지만 구한 사람 수를 한 명씩 확인한 구조 명부와는 다릅니다.
침몰 뒤 다시 만난 프랭크와 주디는 수마트라의 철도 건설 수용소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질병이 도는 환경에서도 사람들의 돌봄은 계속 필요했습니다. 먹을 것을 나누며 개를 돌보던 사람들은 주디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전후 수훈 문서에는 주디가 위험을 알리고 동료 포로들의 사기를 지탱한 공로가 남아 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동료들은 주디를 챙겼습니다. 군용견 기념단체는 포로들이 함께 살아남은 주디를 남겨 두려 하지 않고 귀환을 도왔다고 설명합니다. 영국에 도착한 주디는 6개월 동안 검역을 거쳤습니다. 일정 기간 따로 머물며 확인받은 당시 과정으로, 지금의 반려견 입국 규정을 안내하는 수치는 아닙니다.
주디의 공로와 프랭크의 돌봄
주디의 수훈은 1946년 4월 30일 발표됐고, 그해 5월 PDSA 디킨 메달이 수여됐습니다. 국립기록원의 수여 사진 설명에는 5월 2일이 적혀 있습니다. 발표와 수여는 서로 다른 날짜입니다. 디킨 메달은 전쟁에서 동물이 보인 용기와 헌신을 기리는 상입니다.
수훈 기록은 주디가 수용소에서 보인 용기와 인내, 동료들의 사기를 지탱하고 위험을 알아차려 생명을 도운 공로를 기립니다. 극적인 침몰 일화뿐 아니라 사람들이 포로 생활을 견디는 데 힘이 된 공로도 인정받았습니다.
프랭크도 주디를 돌본 일을 인정받아 성 자일스 백십자상(White Cross of St Giles)을 받았습니다. 전후의 수훈 기록에는 사람들을 도운 주디의 디킨 메달과 주디를 지킨 프랭크의 상이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주디는 1950년 2월 17일 오늘날 탄자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프랭크는 주디의 무덤에 기념물을 남겼고, 2006년 그의 가족은 메달을 영국 전쟁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81A라는 포로 번호는 주디를 보호하고 먹을 것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에서 생겼습니다. 쌀을 나눈 프랭크와 주디를 숨겨 함께 이동하고 귀환을 도운 포로들은 자신들을 도운 개가 끝까지 살아남도록 돌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