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 앞에 커다란 개가 나타납니다. 목에는 작은 나무 술통이 달려 있습니다. 만화와 기념품에서 자주 보는 세인트 버나드의 모습입니다. 정말 술을 싣고 조난자를 구하러 다녔을까요?
세인트 버나드가 알프스에서 여행자를 찾고 도운 역사는 분명합니다. 다만 목의 술통을 실제 구조 장비로 썼다는 믿을 만한 현장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 익숙한 모습이 널리 퍼지는 데에는 1820년에 그려진 한 그림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술통의 이야기는 그림이 나오기 훨씬 전,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높은 고개에서 시작됩니다.
해발 2,469m 고개의 여행자 숙소
그랑생베르나르 고개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오가던 길입니다. 겨울에는 눈보라와 안개 때문에 방향을 잃기 쉬웠고, 추위에 지친 여행자가 몸을 피할 곳도 필요했습니다. 11세기 이곳에 세워진 호스피스는 그런 사람들을 맞는 쉼터였습니다. 여기서 호스피스는 여행자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내주던 숙소를 뜻합니다.
호스피스가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여러 세기 뒤인 17세기 중반 무렵입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1660~1670년대로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큰 개들이 숙소를 지키는 일을 했고, 점차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서며 눈과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를 찾았습니다.
개들의 흔적은 1695년 그림과 1707년 호스피스 문서에 남아 있습니다. 이 날짜는 개가 기록에 등장하는 시점입니다. 정확히 어느 해 첫 개를 데려왔는지까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산에서 개가 맡은 일은 사람의 수색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덮인 길을 찾아가고, 냄새를 맡으며 조난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수도회 사람들과 길잡이들은 개들과 함께 험한 고개를 오갔습니다. 이들의 구조 활동이 이야기와 그림으로 전해지면서 고개의 개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 알려졌습니다.
1800년에 태어난 배리의 생애
이곳의 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름이 배리입니다. 배리는 1800년부터 1812년까지 호스피스에서 지냈고, 40명이 넘는 사람을 구조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재단과 박물관도 이 수치를 소개하지만, 모든 구조 장면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는 상세 명단이 남아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배리에게는 여러 이야기가 따라붙었습니다. 아이를 등에 태워 구했다는 일화가 있고, 눈 속에서 만난 군인이 배리를 늑대로 착각해 죽였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국립박물관이 설명하는 배리의 말년은 다릅니다. 배리는 1812년 베른으로 옮겨졌고, 1814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군인의 공격으로 구조 현장에서 숨졌다는 결말은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입니다.
배리가 떠난 뒤에도 호스피스에서는 개들을 길렀습니다. 한 개의 명성이 전체 구조견을 대표하게 됐고, ‘배리’라는 이름은 세인트 버나드를 떠올리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1820년, 그림 속에 등장한 작은 술통
영국 화가 에드윈 랜드시어가 열여덟 살 때 그린 「곤경에 처한 여행자를 소생시키는 알프스 마스티프들」을 보면 술통의 인기가 이해됩니다. 눈 속에 쓰러진 사람 주위로 큰 개 두 마리가 있고, 뒤편에서는 수도회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붉은 담요를 두른 개는 눈을 헤치는 듯한 자세입니다. 그 옆의 짙은 털을 가진 개는 사람의 맨손을 핥고 있으며, 목에는 가죽끈에 매단 작은 술통이 있습니다. 누군가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개들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장면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미국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1820년 전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미국 국립 스포츠 도서관·박물관은 이 그림을 술통 이미지가 퍼지는 중요한 계기로 설명합니다. 실제 구조견의 명성에 눈에 띄는 소품이 더해졌고, 이후 그림과 기념품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됐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820년에 술통을 단 구조견이 그림에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화가가 무엇을 보고 소품을 골랐는지, 그 전에 같은 표현이 전혀 없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작품의 영향이 컸다는 설명과 화가가 전설을 혼자 처음 발명했다는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술통 목걸이와 바뀐 배리의 표본
술통 목걸이 자체는 실물로도 남아 있습니다. 미국 국립 스포츠 도서관·박물관이 2023년에 소개한 소장품은 나무와 금속, 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14년에 기증받았지만, 제작 연대와 원래 만들어진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박물관은 이 물건을 랜드시어의 그림 이후 인기를 얻은 술통 상징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그래서 소장품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이 술통으로 산에서 사람을 구조했다’고 결론 낼 수는 없습니다. 실제 물건의 역사에도 사람들이 기념하고 꾸미기 위해 만든 물건의 역사가 포함됩니다.
배리의 몸을 보존한 표본에도 후대의 손길이 남았습니다. 1923년 표본의 외형을 고치면서 다리가 길어지고 머리가 커졌으며, 고개를 더 당당하게 든 모습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늠름한 세인트 버나드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오늘날 표본은 배리를 기념하는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20세기 사람들이 영웅견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 주고 싶어 했는지도 알려 줍니다. 살아 있던 배리의 외모를 고스란히 멈춰 놓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개의 작업견에서 오늘의 세인트 버나드로
지금 익숙한 세인트 버나드의 모습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습니다. 배리 재단은 이 품종의 직접적인 조상을 그 지역에 널리 있던 큰 농장견들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원하는 특징을 가진 개를 골라 번식시켰습니다.
1867년 하인리히 슈마허는 자신의 개들에게 혈통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884년 스위스의 혈통 등록부가 만들어졌을 때 첫 등록견은 세인트 버나드 레옹이었고, 같은 해 품종 클럽도 생겼습니다. 1887년에는 국제 회의에서 스위스 품종으로 인정되고 품종 기준이 정해졌습니다. 배리가 살던 시대와 현대의 품종 관리 사이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5년 1월, 배리 재단은 수도회에서 개와 번식장 운영을 이어받았습니다. 재단은 역사와 번식 전통을 보존하면서 개들의 건강과 일상을 돌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육받은 개와 핸들러가 요양시설과 병원 등을 찾아가는 활동도 합니다. 산에서 조난자를 찾던 역사에, 사람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역할이 더해졌습니다.
술로 몸을 녹인다는 장면은 따라 하지 마세요
술통 전설에는 추위에 지친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면 회복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저체온증이 의심되는 사람에게 술을 주면 안 됩니다. 영국 NHS도 이를 명확히 금지합니다.
심한 추위 뒤 말이 어눌해지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등 저체온증이 의심되면 즉시 응급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119에 신고하고, 안전한 실내나 바람을 피할 곳으로 옮겨 젖은 옷을 벗기고 마른 담요 등으로 감쌉니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실 것을 주지 마세요.
술통을 단 개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 작은 소품이 걸어온 길을 떠올려 보세요. 고개의 여행자 숙소, 사람을 찾던 개들, 배리의 생애, 1820년의 그림과 후대의 기념물이 하나의 익숙한 모습 안에 겹쳐 있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눈길을 함께 다니며 여행자를 도왔던 사람과 개가 있습니다.
더 읽어 보기
- 스위스 연방정부: 세인트 버나드가 알프스의 상징이 되기까지 — 고개와 호스피스, 개들의 도입과 품종 역사.
- 배리 재단: 품종의 역사 — 초기 기록과 19세기의 혈통 등록·품종 기준.
- 스위스 국립박물관: 배리 — 배리의 말년, 죽음에 관한 전설, 1923년 표본 수정.
- 미국 국립미술관: 랜드시어의 1820년 작품 — 원작 이미지와 제작·전시 기록.
- 미국 국립 스포츠 도서관·박물관: 세인트 버나드와 술통 목걸이 — 소장품의 재질, 기증과 알려지지 않은 제작 이력.
- 배리랜드: 배리와 재단 소개 · 배리 재단의 오늘날 활동.
- 질병관리청: 한파 건강영향 · NHS: 저체온증 안내 — 술을 주지 말아야 하는 상황과 응급 도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주의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