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월 14일, 남극의 쇼와기지를 향해 날아가던 헬리콥터에서 개 두 마리가 보였습니다. 거의 1년 동안 사람이 없었던 기지였습니다. 뒤이어 여섯 번째 비행편으로 도착한 대원 기타무라 다이이치가 두 개를 알아봤습니다. 제1차 관측대에서 그가 돌봤던 타로와 지로였습니다.
일본에 전해진 두 형제의 생존 소식은 훗날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재회까지의 길에는 기지에 남겨진 열다섯 마리, 얼음에 갇힌 배,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교대가 있었습니다. 다시 만난 뒤 타로와 지로가 살아간 시간도 서로 달랐습니다.
와카나이에서 준비한 남극행
타로와 지로는 카라후토견 형제였습니다. 카라후토견은 사할린 일대와 관련된 북방의 썰매개로, ‘사할린 허스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시베리안 허스키와 같은 등록 품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개들의 털색과 외모도 다양했습니다.
두 형제를 구별하는 단서는 당시 영상에도 남아 있습니다. 타로는 귀가 처져 있고, 지로는 가슴과 앞발 끝에 흰 털이 있습니다. 같은 무리 속의 검은 개 두 마리를 바라볼 때 알아둘 만한 차이입니다.
1956년, 홋카이도 와카나이공원의 언덕에 남극행 개들을 위한 훈련소가 마련됐습니다. 홋카이도대학 연구자와 산악부 학생 등이 참여해 약 40마리를 훈련시켰습니다. 눈과 바람 속에서 생활하고 썰매를 끄는 연습, 여러 마리가 한 팀으로 움직이는 연습이 이어졌습니다.
그해 11월, 훈련받은 개들 가운데 22마리가 제1차 일본 남극관측대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개들은 기지 생활을 함께할 동물이자, 관측 장비와 식량을 나를 썰매 팀이었습니다.
기지를 세우고 개들과 첫 겨울을 보내다
1957~1958년은 여러 나라가 지구의 자연 현상을 함께 조사한 ‘국제지구관측년’이었습니다. 일본의 남극관측도 이 국제 협력의 일부였습니다. 관측선 소야는 1956년 11월 8일 일본을 떠났고, 이듬해 1월 29일 관측대는 옹굴섬에 쇼와기지를 열었습니다.
제1차대의 원래 임무는 기지 위치를 정하고 건물을 세워 다음 관측대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겨울까지 남을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현지 상황이 비교적 좋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11명이 남아 첫 겨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남극에서 겨울을 나며 관측을 계속하는 일을 ‘월동’이라고 합니다.
약 2주 동안 거주동과 발전동 등 네 동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이제 기지 밖으로 조사에 나갈 이동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설상차에는 기술적인 불안이 있어, 긴 조사 여행에는 개썰매가 중요한 몫을 맡았습니다.
출발 전에 훈련했다고 곧바로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립극지연구소의 전시 자료는 오랜 항해를 거친 개들이 체력이 떨어지거나 명령을 잊어 남극에서 훈련을 다시 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사람과 개가 현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줄을 어떻게 연결할지도 중요했습니다. 개들을 부채꼴로 넓게 연결하면 모두를 살피기 좋지만, 개들끼리 다투거나 줄이 엉키기 쉬웠습니다. 관측대는 이런 문제를 줄이려고 중심 줄에 개들을 연결하는 방식의 변형을 많이 썼습니다.
썰매에는 장비와 식량 등 약 500kg의 짐을 싣기도 했습니다. 제1차 월동기에 개썰매로 이루어진 조사 여행의 거리는 보츠누텐산 조사 등을 합쳐 약 1,600km였습니다. 이 수치는 팀과 썰매의 작업을 설명합니다. 타로나 지로 한 마리가 그 무게를 혼자 끌거나 그 거리를 모두 달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1958년, 교대하러 온 배가 얼음에 갇혔다
첫 월동을 마치면 새 대원들이 들어오고 기존 대원들은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관측대를 태운 소야는 1957년 12월 31일 해빙에 갇혔습니다. 겹겹이 쌓여 굳은 바다 얼음과 함께 약 40일 동안 표류하면서 기지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1958년 2월, 미국 쇄빙선 버턴아일랜드의 지원을 받으며 소형기로 첫 월동대원 11명과 강아지 여섯 마리를 배로 옮겼습니다. 다음 월동을 준비하려는 세 대원이 다시 기지로 들어갔지만, 날씨는 더 나빠졌습니다.
남은 비행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상황에서 세 사람에게도 귀선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들은 어미 개 시로코와 남은 강아지 두 마리를 태웠습니다. 무게를 줄이려고 개인 물품과 예비 연료까지 내려놓은 뒤에야 배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배의 식수와 연료도 부족해졌고 선체 손상이 거듭됐습니다. 결국 2월 24일 제2차대의 월동을 포기하고 귀국하기로 했습니다. 기지를 계속 운영하려던 계획은 중단됐고, 데려오지 못한 개 열다섯 마리는 쇼와기지에 묶인 채 남았습니다.
당시의 철수 보고서는 기지로 새 대원과 물자를 보내려는 시도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을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지에 남은 개들을 다시 태울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1959년 1월 14일, 다시 만난 두 마리
다음 관측대를 준비하면서 소야는 대형 헬리콥터 두 대를 실을 수 있도록 개조됐습니다. 이듬해 첫 비행편이 쇼와기지에 다가갔을 때 대원들은 위에서 개 두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도착한 기타무라가 타로와 지로임을 확인했습니다. 기지가 비어 있던 긴 겨울을 지나 두 개가 살아 있었습니다.
관측대가 확인한 열다섯 마리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생존 확인: 2마리. 타로와 지로였습니다.
- 사망 확인: 7마리. 사슬에 묶인 채 죽어 있었습니다.
- 행방불명: 6마리. 돌아온 관측대가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 남극으로 출발한 22마리와 철수 때 남겨진 15마리는 서로 다른 시점의 숫자입니다. 또 생존한 두 마리를 제외한 13마리 모두의 죽음을 현장에서 확인한 것도 아닙니다. 일곱 마리는 죽은 채 발견됐고, 여섯 마리의 마지막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없던 시간은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두 개는 무엇을 먹고 버텼을까요? 국립극지연구소는 기지에 남겨 둔 개 먹이에 손댄 흔적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발견 당시 먹이의 상태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 사실만으로 실제 먹이와 사냥 방법, 이동 경로를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없는 동안의 일을 연속해서 지켜본 기록도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동물을 잡아먹었다’, ‘두 형제가 항상 함께 움직였다’ 같은 장면을 사실로 채워 넣기는 어렵습니다. 훗날 만들어진 영화 속 생존 장면을 당시의 목격담처럼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다시 만난 뒤의 모습은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립극지연구소가 공개한 제3차대의 8mm 필름에는 대원들 곁에 있는 타로와 지로가 나옵니다. 이 자료는 살아남은 두 개의 모습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전합니다. 기지가 비어 있던 시기의 생활까지 보여 주는 영상은 아닙니다.
제3차대는 토치·아쿠·미야라는 강아지 세 마리도 데려갔습니다. 연구소 전시 자료에는 타로와 지로가 새로 온 강아지들과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두 형제는 발견 직후 곧바로 떠나지 않고, 다시 사람이 사는 쇼와기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로의 남극 생활, 타로의 홋카이도 생활
지로는 1960년 7월 남극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유해는 일본으로 돌아왔고, 보존 표본은 도쿄의 국립과학박물관에 남았습니다.
타로는 1961년 5월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에서 지내다가 1970년 8월 11일 죽었습니다. 대학은 타로의 표본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재발견의 순간을 함께한 형제였지만, 귀환의 방식과 마지막을 맞은 곳은 달랐습니다.
관측대의 이동 수단도 바뀌었습니다. 설상차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제4차 월동대를 끝으로 개썰매 사용은 마무리됐습니다. 처음 기지를 세우고 먼 조사 여행을 다니던 개들의 역할은 다른 장비로 이어졌습니다.
쇼와기지에는 1959년 3월 카라후토견을 추모하는 불상이 세워졌습니다. 훗날 보존을 위해 일본으로 옮겨진 이 기념물은 남극 관측에 함께했던 개들을 기립니다. 타로와 지로의 생존과 귀환을 따라 읽다 보면, 그 곁에 있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개들의 자리도 만나게 됩니다.
기록과 영상으로 더 읽기
- 홋카이도대학 문서관: 와카나이 훈련소 사진 — 약 40마리의 훈련과 22마리의 출항.
- 국립극지연구소: 남극관측과 쇼와기지의 시작 · 개썰매에서 설상차로 — 초기 기지와 개썰매의 실제 작업.
- 국립극지연구소: 제2차대의 철수와 타로·지로 발견 · 1958년 제2차대 행동 보고서 — 얼음과 수송 문제, 월동 포기의 경과.
- 국립극지연구소: 1959년 1월 14일 생존 확인 — 남겨진 15마리의 상황.
- 국립극지연구소 아카이브: 제3차대의 실제 영상 — 비행과 재회, 두 개를 구별하는 외형.
- 국립극지연구소: 카라후토견의 추모 · 홋카이도대학: 타로의 말년 — 서로 다른 귀환과 이후의 생애.
- 이어 읽기: 하치코의 생애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