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함께 길을 건너는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됐을까?

1928년, 저먼 셰퍼드 버디와 모리스 프랭크는 기자들이 지켜보는 뉴욕의 거리를 건넜습니다. 버디의 원래 이름에 얽힌 사연부터 사람과 개가 함께 받은 훈련, 안내견 학교의 설립과 출입권을 넓히려는 노력까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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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복장의 남성이 하네스를 잡고 저먼 셰퍼드와 뉴욕 항구 근처 보도를 걷는 재구성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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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저먼 셰퍼드 버디와 모리스 프랭크는 기자들이 지켜보는 뉴욕의 거리를 건넜습니다. 버디의 원래 이름에 얽힌 사연부터 사람과 개가 함께 받은 훈련, 안내견 학교의 설립과 출입권을 넓히려는 노력까지 살펴봅니다.

역사 속의 개들

15 편 중 14 번째 이야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살아온 개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돌아봅니다.

다음 이야기 · 군견 칩스, 시칠리아 전투를 지나 가족에게 돌아오기까지

전체 읽기 순서 · 15편
  1. 발토 한 마리의 영웅담이 아니었다: 토고와 1925년 놈 혈청 운송
  2. 하치코는 무엇을 기다렸나: 실제 기록과 충견의 탄생
  3. 사람의 한 끼를 위해 바퀴 속을 달렸던 개, 턴스핏 도그
  4. 철도와 함께 달라진 로트와일러의 일, 가축시장부터 경찰견까지
  5. 소방서 달마시안 역사, 왜 말과 마차 곁을 달렸을까요?
  6. 세인트 버나드 술통은 진짜였을까? 200년 넘게 이어진 전설
  7. 스터비 제1차 세계대전 동행기, 훈련장에서 전후의 삶까지
  8. 괌 전투 군견, 정글에서 개의 신호를 읽은 사람들
  9. 남극에 남겨진 타로와 지로, 살아남은 형제의 엇갈린 삶
  10.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는 왜 정치 연설에 등장했을까?
  11. 닥스훈트는 어떻게 전쟁 포스터에서 ‘적국의 개’가 됐을까?
  12. 표 없이 기차에 오르던 개, 철도견 밥을 아시나요?
  13. 폼페이의 개는 왜 도망칠 수 없었을까?
  14. 개와 함께 길을 건너는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됐을까? 읽는 중
  15. 군견 칩스, 시칠리아 전투를 지나 가족에게 돌아오기까지

1928년 6월 11일, 뉴욕의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기자들이 시각장애인 청년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와 저먼 셰퍼드 버디(Buddy)를 지켜봤다. 기자들은 개가 사람을 안전하게 안내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프랭크와 버디는 그 길을 건넜다. 이후 프랭크는 스위스의 도로시 해리슨 유스티스(Dorothy Harrison Eustis)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보에는 한 단어만 적혀 있었다.

“SUCCESS.” 성공.

프랭크는 버디의 안내를 받아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더 많은 사람이 같은 기회를 얻으려면 개를 훈련할 학교와 사용자 교육이 필요했다. 안내견과 함께 목적지까지 가더라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면 이동에 제약이 생긴다. 함께 출입할 권리도 보장돼야 했다.

1920년대 복장의 남성이 하네스를 잡고 저먼 셰퍼드와 뉴욕 항구 근처 보도를 걷는 재구성 장면
 

버디의 첫 이름은 ‘키스’였다

버디는 1926년 스위스 브베에서 태어난 암컷 저먼 셰퍼드였다. 처음에는 키스(Kis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유스티스가 운영하던 포추네이트 필즈(Fortunate Fields)는 경찰·군용견을 기르고 훈련하는 곳이었다. 키스도 경찰·군용견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다.

키스의 앞날은 테네시에서 온 편지 한 통으로 달라졌다. 안내견에 관한 유스티스의 글을 접한 프랭크가 자신도 안내견을 원한다며 편지를 보낸 것이다. 유스티스는 독일의 안내견 학교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지만, 직접 안내견을 훈련해 본 적은 없었다.

유스티스는 수석 훈련사 잭 험프리(Jack Humphrey)에게 안내견을 훈련할 수 있는지 물었다. 험프리는 가능하다고 답하면서, 안내견을 사용할 사람도 함께 훈련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험프리는 키스를 안내견으로 훈련할 개 중 하나로 골랐다. 프랭크는 1928년 4월 스위스로 가서 약 5주 동안 키스와 함께 훈련했다. 키스에게 버디, 곧 ‘친구’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프랭크였다. 둘은 이 훈련을 마친 뒤 뉴욕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사람도 개와 함께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안내견이 앞장서면 사람은 하네스 손잡이만 잡고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프랭크는 안내견을 데려오는 것뿐 아니라, 개와 함께 이동하는 법과 개를 돌보는 법도 배워야 했다.

버디가 사용했던 갈색 가죽 하네스는 지금도 남아 있다. 몸통을 감싸는 끈과 버클, 여러 겹의 가죽으로 보강한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 위의 금속판에는 더 시잉 아이와 테네시주 내슈빌의 이름이 적혀 있다. 더 시잉 아이는 프랭크와 유스티스가 함께 설립한 안내견 학교다.

오늘날 안내견 사용자도 하네스 손잡이로 개의 움직임을 느낀다. 사람과 개는 이동하면서 신호를 주고받는다.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개의 안내와 사람의 판단이 함께 필요하다.

조용한 훈련 길에서 저먼 셰퍼드와 함께 걷는 남성을 훈련사가 살피는 재구성 장면
사람과 개가 함께 배우는 훈련을 재구성한 이미지. 특정 훈련 장면의 실제 기록은 아니다.

버디가 태어나기 전부터 안내견 학교가 있었다

버디는 세계 최초 안내견이 아니었다. 버디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럽에는 안내견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학교가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 중 시력을 잃은 군인들이 돌아오면서 이들의 이동을 도울 안내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국제안내견연맹(IGDF)의 역사 자료에는 1916년 독일 올덴부르크에 안내견 학교가 문을 열었다고 나온다.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이었다.

초기 학교들은 훈련 수준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포츠담의 학교에서는 안내견으로 적합한 개를 고르고, 각 사용자에게 맞는 개를 연결해 주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훈련을 마친 사람과 개가 집에서 잘 적응하는지도 살폈다.

유스티스가 1927년 미국 잡지에 소개한 것도 포츠담의 훈련이었다. 그 글을 접한 프랭크는 유스티스에게 편지를 보낸 뒤 스위스에서 버디와 함께 훈련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프랭크와 버디는 뉴욕에서 길을 건너며 유럽에서 쌓아 온 안내견 훈련의 성과를 보여 줬다.

버디 다음에는 타타르와 갈라가 있었다

1929년 1월 29일, 프랭크와 유스티스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더 시잉 아이(The Seeing Eye)를 설립했다. 유스티스는 초대 회장, 프랭크는 운영 책임자를 맡았다. 안내견을 요청했던 프랭크가 이제 다른 사람들도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게 된 것이다.

한 달 뒤 첫 수료생 두 명이 나왔다. 레이먼드 해리스는 타타르(Tartar)와, 하워드 뷰캐넌은 갈라(Gala)와 짝을 이뤘다. 프랭크에 이어 해리스와 뷰캐넌도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는 법을 배웠다. 버디와 프랭크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교육으로 이어졌다.

기관은 1931년 뉴저지주 휘퍼니로 옮겼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첫 네 마리 안내견이 훈련을 마쳤고, 1934년에는 안내견 협회가 설립됐다. 여러 나라에 학교와 지원 조직이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이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됐다.

길을 건너도 안내견과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면

안내견이 거리의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안내해도,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면 문 앞에서 멈춰야 한다. 개를 잘 훈련하는 것만으로는 출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이 안내견과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규칙을 바꾸는 일도 필요했다.

프랭크와 초기 수료생들은 안내견과 함께 공공장소에 들어가고 육상교통·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탰다. 더 시잉 아이는 이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안내견 사용자를 위해 공공장소와 주거, 교통수단 이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프랭크는 뉴욕에서 버디와 길을 건넌 뒤에도, 안내견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학교는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한편, 사용자가 안내견과 함께 출입할 권리를 확보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좋은 안내견은 때로 명령을 거절한다

안내견이 언제나 사람의 지시를 따를 것 같지만, 오늘날의 훈련에는 위험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 법도 포함된다. 앞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더라도 사람과 개가 위험해질 상황이면 멈추도록 배운다. 이를 ‘지적 불복종’이라고 부른다. 안전하게 안내하려면 명령을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용자도 길을 건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교통 흐름을 듣고 언제 출발할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개는 건너편까지 안내하며 진입하는 차량 같은 위험을 피하도록 훈련받는다. 신호등을 읽고 출발 시점까지 알아서 정하는 것은 개의 역할이 아니다.

이러한 역할 분담과 지적 불복종은 오늘날의 안내견 교육 자료에 나온다. 버디가 받았던 훈련도 모두 같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 험프리가 프랭크에게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듯,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려면 사람도 배워야 한다.

버디가 저먼 셰퍼드였다고 해서 이 견종의 개들이 모두 안내견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안내견과 사람을 짝지을 때는 개의 특성뿐 아니라 사람의 걸음 속도와 생활 환경도 살핀다. 개와 사용자가 서로 잘 맞는지도 중요하다.

프랭크와 버디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프랭크는 스스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고, 스위스로 가서 훈련받았으며, 돌아와 안내견 학교의 운영에 참여했다.

1928년의 전보에는 ‘성공’이라는 한 단어가 적혔다. 이듬해 학교의 기록에는 해리스와 타타르, 뷰캐넌과 갈라의 이름이 등장했다. 학교가 생기면서 프랭크가 받았던 훈련을 다른 사람들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오늘 길에서 일하는 안내견을 만나면 개를 부르거나 만져서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좋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먼저 사용자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으면 된다.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일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The Seeing Eye — The Seeing Eye’s Early Beginnings: Buddy (2026년 1월 12일)
  2. International Guide Dog Federation — History of Guide Dogs
  3. The Seeing Eye — Our History
  4. American Printing House — Celebrating the First Guide Dog at The Dot Experience (2025년 9월 19일)
  5. Guiding Eyes for the Blind — Guide Dogs 101
  6. The Seeing Eye — 훈련 단계 안내 자료 (길 건너기·지적 불복종 부분)
  7. The Seeing Eye — Your Rights & Legal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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