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살개는 어떻게 사라질 뻔한 개에서 지켜야 할 개가 됐을까?

삽살개가 줄어든 시대의 배경부터 남은 개를 모아 번식시킨 과정, 1992년 경산의 삽살개 지정과 유전 연구까지 살펴봅니다. 복원사에 등장하는 8마리는 어떤 집단이었을까요? 마릿수가 늘어도 가계 기록과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 남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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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회색 털과 황갈색 수염이 보이는 삽살개의 얼굴과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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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확인할 기준

삽살개가 줄어든 시대의 배경부터 남은 개를 모아 번식시킨 과정, 1992년 경산의 삽살개 지정과 유전 연구까지 살펴봅니다. 복원사에 등장하는 8마리는 어떤 집단이었을까요? 마릿수가 늘어도 가계 기록과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 남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글의 적용 대상과 조건

삽살개와 한국 토종견의 보존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

삽살개 하면 얼굴을 덮은 긴 털과 귀신을 쫓는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라질 뻔한 개를 다시 늘렸다는 보존 이야기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개가 늘어났다면 왜 지금도 지켜야 할 개로 남아 있을까요?

삽살개의 보존은 남아 있는 개를 찾아 모으는 일에서 시작해 사육과 번식, 부모 관계의 기록, 유전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줄어든 개의 수를 회복한 뒤에도 그 집단을 다음 세대로 이어 가는 일이 남습니다. 개를 다시 늘린 과정과 이후의 기록·연구를 함께 보면, 보존이 무엇을 지키는 일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앞발을 들고 달리는 회색 삽살개의 전신 옆모습

오래된 이름과 그림에 남은 삽살개

삽살개라는 이름에는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개라는 풀이가 전해 옵니다. 오래 전해 온 이야기라고 해서 말의 기원까지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2024년 국립국어원 어원 연구보고서는 이 풀이를 뒷받침할 고유어 근거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털과 관련한 다른 견해도 소개하지만, 그 견해 역시 확정된 어원은 아닙니다.

이름을 ‘삽’과 ‘살’로 나누어 뜻을 정하려면 실제 말의 쓰임과 변화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더 필요합니다. 귀신을 쫓는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 왔는지와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같은 보고서는 1527년 『훈몽자회』에서 삽살개로 이어지는 표기가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이 문헌 설명은 이름이 오래 쓰였다는 근거이지만, 그 이름으로 불린 옛 개와 오늘 보존하는 개가 부모와 자식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까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그 관계를 밝히려면 별도의 기록이 필요합니다.

1743년 김두량이 그린 「삽살개」에도 개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견도」나 「방구도」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김두량의 「흑구도」와는 다른 그림입니다. 조선시대에 개를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그림 속 개가 오늘의 삽살개와 닮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닮음만으로 오늘의 개가 그림 속 개의 후손이라는 혈통 관계까지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삽살개가 신라의 군견이었다는 이야기도 전승만으로 실제 사건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 개들의 유전정보를 비교한 2023년 연구는 삽살개 계통과 티베탄 마스티프 계통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때를 추정했습니다. 이 추정은 어떤 개들을 비교했는지뿐 아니라, 개와 늑대가 갈라진 때를 얼마나 오래전으로 가정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두 계통이 갈라진 때와 삽살개가 한반도에 도착한 날짜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이 모형이나 전승만으로 삽살개의 도착일, 현대 품종이 성립한 때, 고대부터 변하지 않은 혈통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개가 줄어든 시대의 배경

오래된 이름과 그림이 남아 있어도 실제 개의 집단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삽살개의 감소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개가죽 수집입니다. 개의 가죽을 뜻하는 ‘견피’는 당시 전쟁 물자로 거두어졌고, 후대 역사연구와 기관 해설은 이 공출 정책을 개가 줄어든 배경으로 짚습니다.

여기서 조선의 개 전체에 관한 정책과 삽살개만의 피해 수는 구별해야 합니다. 확인한 연구와 해설로는 삽살개가 정확히 몇 마리 희생됐는지, 감소에 각 원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계산할 수 없습니다. 개가죽 수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삽살개만 겨냥한 절멸 의도나 유일한 감소 원인으로 넓히기도 어렵습니다.

피해 규모로 소개되는 큰 숫자에는 무엇을 센 값인지도 따라붙어야 합니다. 역사연구가 인용한 가죽의 ‘생산가능량’은 생산할 수 있다고 본 양입니다. 실제로 거둔 가죽의 실적이나 죽은 삽살개를 센 결과와는 다릅니다. 가능한 양을 여러 해에 걸쳐 더한다고 확인된 도살 누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자료는 개가 줄어든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지만, 삽살개만의 피해 마릿수까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개를 찾고 기르며 이어 온 사람들

풀밭에 앞발을 뻗고 편히 누워 있는 밝은 털의 삽살개

보존의 다음 장에는 남아 있는 개를 찾아 모으고, 기르며, 번식을 이어 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969년의 탐색·보존 사업에는 경북대의 탁연빈·하성진 등 여러 관계자가 참여했습니다. 재단의 복원 설명과 국립축산과학원 해설에는 수집과 사육을 맡은 사람들, 이후 사업을 이어 간 사람이 각각 나옵니다.

하성진과 하지홍은 서로 다른 인물이며, 초기의 수집·사육과 1985년 하지홍의 후속 육종 사업을 한 사람의 활동으로 합칠 수는 없습니다. 육종은 번식할 개를 골라 집단을 이어 가는 일입니다.

복원사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8마리’도 어느 때 어디에 있던 개들인지 붙여 읽으면 뜻이 달라집니다.

시기 설명하는
집단과 숫자
기록의
성격
1969년 무렵 탐색·수집한 30두 또는 30여 마리 초기 보존에 관한 후대 기관 설명
1985년 하지홍이 목장에서 만난 8마리 후속 보존 사업에 관한 기관 설명
1986년 복원에 사용한 출발 개체 8마리 2015년·2019년 연구 논문의 역사 설명
1989년 목장에서 기르던 30여 마리 국립축산과학원의 후대 해설

표의 숫자는 수집 집단, 목장 집단, 복원의 출발 집단을 각각 가리킵니다. 1985년의 8마리와 논문이 말하는 1986년의 8마리가 동일한 명단이었는지는 원래 개체 기록을 더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숫자도 당시 전국에 살아 있던 삽살개를 모두 조사한 결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전국의 마지막 8마리’라고 바꾸면 자료가 말하는 대상부터 달라집니다.

시기와 집단을 나누어 보면 삽살개 보존은 한 번 개를 구조하고 끝낸 기적담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초기의 탐색과 수집 뒤에 사육이 이어졌고, 후속 번식 사업으로 그 집단을 다시 늘려 간 긴 과정입니다.

1992년, 공식 보존 대상이 된 경산의 삽살개

보존해 온 집단은 1992년 3월 10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국내 공식 명칭은 ‘경산의 삽살개’입니다. 발표나 보도에 등장하는 날짜와 구분해, 지정일은 국가유산포털의 공식 기록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어 온 보존이 공식 보호 대상으로 연결된 전환점입니다.

공식 기록에 나온 숫자도 각각 가리키는 대상이 있습니다. 포털에 있는 적정 사육 수와 등록 수는 경산의 등록 대상과 기준을 설명하는 값입니다. 이 값을 현재 전국에서 살아 있는 삽살개를 모두 센 수로 옮겨 쓸 수는 없습니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이어 온 집단이 공식 보호 대상이 됐다는 성과입니다. 그 뒤에도 개들 사이에 남아 있는 유전정보의 차이를 유지하고, 번식을 통해 그 차이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지 살피는 일이 남습니다. 개의 수가 회복된 뒤 연구자들이 살핀 질문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릿수가 늘어도 남는 질문

유전적 다양성은 개들 사이에 남아 있는 유전정보의 차이를 뜻합니다. 마릿수가 개가 얼마나 있는지를 알려 준다면, 다양성은 그 개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남아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다음 세대에는 일부 부모에게서 온 유전정보가 자손들에게 더 많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개나 새끼를 낳은 개를 세는 것만으로는 여러 가계의 유전정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가계는 부모와 새끼의 관계를 적은 기록입니다. 연구에서는 가계별로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에 남는 정도, 가까운 혈연과 유전정보의 변화 등을 고려해 집단 규모를 추정합니다. 그 지표가 ‘유효집단크기’이며 실제 개를 센 마릿수와는 다릅니다.

2012년 연구는 가계 기록과 일부 개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유효집단크기를 추정했습니다. 부모와 새끼의 관계가 몇 세대까지, 얼마나 많은 개에 걸쳐 기록됐는지와 자료·계산법에 따라 추정값은 달라집니다. 가계에 기록된 개의 수나 연구에 포함된 표본 수는 당시 연구 자료의 범위이며, 지금 전국에 살아 있는 삽살개의 수가 아닙니다.

2019년에는 삽살개 96마리와 외국의 7개 견종을 비교한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 비교 집단에서 삽살개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게 나타났지만, 연구자들은 그 다양성을 오랫동안 이어 갈 수 있을지도 함께 살폈습니다. 당시 비교한 개들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결과와, 번식을 거쳐 그 차이를 계속 유지하는 데 대한 우려는 함께 나올 수 있습니다. 앞의 결과는 조사한 개들 사이의 차이를 말하고, 뒤의 질문은 다음 세대까지 그 차이가 이어질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2019년의 비교 결과는 연구에 포함된 집단에 한정됩니다. 모든 견종 가운데 다양성이 가장 높다는 순위나, 앞으로도 다양성이 유지된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계산 모형으로 내다본 미래 역시 확정된 멸종 예고와 다릅니다.

2012년의 유효집단크기 추정과 2019년의 다양성 비교는 사용한 자료와 계산법, 답하려는 질문이 서로 다릅니다. 두 연구의 결과를 하나의 최신 전국 개체 수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결과는 개들 사이에 남은 차이와 그 차이가 다음 세대에 이어지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쓰입니다.

긴 털 뒤에 있는 기록

긴 회색 털과 황갈색 수염이 보이는 삽살개의 얼굴과 어깨
긴 털이 익숙한 삽살개. 보존 연구에서는 털 형질과 부모 관계를 함께 살핀다.

삽살개의 긴 털은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보존 연구는 그 외모 너머도 살핍니다. 2022년 털 형질 연구에는 긴 털을 가진 61마리와 짧은 털을 가진 53마리가 포함됐습니다. 연구자들은 혈액에서 얻은 유전정보와 부모 관계 기록을 함께 이용해 털의 차이를 조사했습니다. 이 표본의 숫자는 연구에 참여한 개의 수이며 전체 삽살개의 털 유형 비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털이 길거나 옛 그림 속 개와 닮았다는 것만으로 옛 개와 오늘의 개가 혈통으로 이어졌는지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림은 당시 개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여 주고, 털의 차이를 다룬 연구는 현대 개들의 특징을 살핍니다. 가계 기록은 어느 개가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알려 줍니다. 그림 속 외모, 현대의 털 특징, 부모와 새끼의 관계는 각각 다른 자료에서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보존 기관의 설명에도 개체를 확인하고 가계를 기록하며 검사와 번식할 개의 선발을 이어 가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 기록은 오늘의 개와 부모 관계를 확인하는 데 쓰입니다. 고대부터 혈통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나 개별 개의 건강 보증으로 넓혀 읽을 수는 없습니다.

2024년에도 외형 관찰과 가계 기록, 유전체 자료를 함께 활용한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유전체 자료는 개의 유전정보를 폭넓게 살피는 자료입니다. 이 연구에서 외형을 관찰한 개는 378마리였고, 유전정보를 처음 분석한 개는 234마리였습니다. 품질검사 등을 거친 뒤에는 205마리의 유전정보 자료를 분석에 썼습니다. 부모 관계를 이용한 분석 모형에는 가계에 기록된 872개체를 포함했습니다.

각 숫자는 관찰 대상, 유전정보 분석 표본, 가계에 기록된 개체라는 서로 다른 자료의 범위를 뜻합니다. 분석 전후의 표본처럼 서로 겹치는 개들이 포함되므로, 이 수를 더해 전체 삽살개의 마릿수로 쓸 수는 없습니다. 이 연구는 복원 뒤에도 기록과 연구가 이어진다는 사례이며, 논문만으로 현재 현장 운영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삽살개는 여러 사람이 남아 있는 개를 찾고 기르며 번식을 이어 온 끝에 공식 보존 대상이 됐습니다. 오래된 이름과 그림에는 삽살개의 모습과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집단을 지키는 일에는 개체와 부모·새끼 관계를 기록하고, 여러 가계의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피는 일도 포함됩니다. 수를 회복한 성과 위에서 개들 사이에 남은 차이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보존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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