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관을 통과한 요크셔테리어, 스모키가 맡은 뜻밖의 일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관을 통해 통신선을 보내야 했던 전쟁터. 작은 요크셔테리어 스모키와 보호자 빌 윈이 맡은 작업, 병원 방문과 전쟁 뒤에도 이어진 동행을 기록으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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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옆에서 작은 요크셔테리어와 교감하는 당시 복장의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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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관을 통해 통신선을 보내야 했던 전쟁터. 작은 요크셔테리어 스모키와 보호자 빌 윈이 맡은 작업, 병원 방문과 전쟁 뒤에도 이어진 동행을 기록으로 살펴봅니다.

스모키는 관 안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은 관이었다. 관의 반대편에는 보호자 빌 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남아 스모키를 다시 불렀다. 윈의 회고를 전한 기사에 나오는 장면이다.

전쟁터에서 개에게 맡길 일이라면 경계나 수색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스모키 앞에 놓인 과제는 달랐다. 비행장 아래에 묻힌 좁은 관을 통과해야 했다. 이 일에는 큰 몸이나 강한 힘보다 작은 몸집이 필요했다.

가느다란 끈을 연결한 작은 요크셔테리어가 좁은 배수관 입구에 다가가는 장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관을 통과하는 일은 스모키의 몫이었다.

비행장을 파헤치는 대신 작은 개를 떠올렸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필리핀 루손의 비행장에 통신선을 설치해야 했다. 부대 사이를 연결하려면 선을 비행장 아래로 보내야 했는데, 다행히 이미 설치된 관이 있었다. 관 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땅을 파서 선을 놓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비행장 일부를 공사하면 비행기 운용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었다. 이미 있는 관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굴착 작업과 지연을 줄일 수 있었다. 그 관에 들어갈 만큼 몸집이 작은 스모키가 윈 곁에 있었다.

스모키를 데리고 있던 윌리엄 ‘빌’ 윈(William ‘Bill’ Wynne)은 항공사진 업무를 하던 미군 병사였다. 그는 스모키에게 여러 명령과 재주를 가르쳤다. 이 일에는 작은 몸집뿐 아니라 윈이 가르친 명령을 따르는 훈련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이런 임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둘이 만난 계기는 훨씬 소박했다.

호주 돈 2파운드로 시작된 인연

둘의 만남은 1944년 뉴기니에서 시작됐다. 동료 병사가 구덩이에서 작은 개를 발견해 부대로 데려왔다. 그 개가 훗날 스모키라는 이름으로 윈과 함께하게 됐다.

윈과의 인터뷰 등을 참고한 케이트 켈리의 기사에는 뜻밖의 사연이 나온다. 개를 데리고 있던 병사는 그날 포커 게임에 참여할 돈이 필요했다. 윈은 당시 호주 화폐로 2파운드를 건네고 스모키를 데려왔다. 병사에게는 포커에 쓸 돈이 생겼고 윈에게는 함께 지낼 작은 개가 생겼다.

윈은 전쟁터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스모키를 돌봤다. 더위와 벌레에 시달리는 환경에서 윈은 자신의 투구를 스모키의 목욕통으로 썼다. 투구는 사람의 머리를 보호하는 물건이지만 개 한 마리를 씻기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투구 속 요크셔테리어’는 귀여운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그 모습에는 윈이 스모키를 먹이고 씻기며 전쟁터에서 함께 지낸 일상이 담겨 있다. 윈은 스모키에게 재주를 가르쳤고 스모키는 병사들 앞에서 그 재주를 보여 줬다.

천막 옆에서 작은 요크셔테리어와 교감하는 당시 복장의 병사
관로 작업에 앞서 윈은 함께 지내던 스모키에게 명령과 재주를 가르쳤다.

관 끝에서 다시 들려온 부름

다시 필리핀의 관 앞으로 돌아가 보자. 스모키에게 처음 연결한 것은 통신선이 아니라 가느다란 끈이었다. 먼저 끈을 반대편으로 보내고 사람이 그 끈을 이용해 통신선을 끌어오는 방법이었다. 스모키의 역할은 통신선을 끌어오는 데 쓸 끈을 관 반대편까지 가져가는 것이었다.

켈리의 기사가 전하는 윈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스모키가 현장에 익숙해지도록 한 뒤 다른 병사에게 개를 맡기고 반대편으로 갔다. 스모키는 관에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윈은 관 끝에서 다시 스모키를 불렀다.

스모키는 다시 들어갔다. 좁아진 부분을 지나 마침내 윈이 있는 쪽으로 나왔다. 끈도 반대편에 도착했다. 이제 병사들은 그 끈을 이용해 통신선을 관 안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작은 개가 관을 통과했다’는 한 줄로 끝내면 빠지는 장면이 있다. 스모키는 처음에 되돌아 나왔고 윈은 반대편에서 계속 스모키를 불렀다. 스모키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평소 그 개를 씻기고 돌보고 가르치던 윈이었다.

병원에서는 사람들 곁에 머물렀다

스모키가 사람들을 도운 곳은 비행장만이 아니었다. 윈이 뎅기열로 입원했을 때 스모키가 병원에 왔다. 간호사들은 스모키에게 관심을 보였다. 스모키는 다른 환자들도 만나게 됐고 윈과 함께 병원을 방문해 재주를 보여 주기도 했다.

비행장에서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병원에서는 사람들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스모키는 배운 재주를 보여 주며 환자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줬다. NASA가 윈의 생애를 소개한 글도 부상병을 찾아간 스모키를 초기 치료견으로 설명한다.

다만 이 설명을 오늘날의 치료견 자격이나 의학적 치료 효과에 관한 근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당시 기록에서는 윈과 스모키가 병원을 방문해 환자들을 만난 활동이 확인된다.

병원 침상 위의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만나는 환자와 곁에 선 간호사 및 병사
윈이 가르친 재주를 보여 주는 스모키는 병원에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함께한 일상

전쟁이 끝나자 둘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윈은 클리블랜드에서 아내 마지와 가정을 꾸렸다. 윈은 스모키와 함께 지역 행사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공연했고 전쟁터를 떠난 뒤에도 둘은 함께 생활했다.

유명해졌다고 생활까지 저절로 풀린 것은 아니었다. 윈은 2014년 NASA 구술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그는 개를 다루는 일을 찾고 있었다. 주거 사정은 어려웠고 그는 결국 오하이오로 돌아와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전쟁을 지나온 사람에게도 가족과 함께 살 집과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했다.

1947년 윈이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한 곳은 당시 미항공자문위원회(NACA)의 연구소였다. NASA가 소개한 윈의 생애에는 연구 사진가와 신문 사진기자로 일한 경력이 나와 있다. 스모키와의 공연은 그가 가족을 꾸리고 직업을 이어 가던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1957년 스모키가 세상을 떠났다. 윈은 깊이 슬퍼했다. 마지는 두 사람이 오래전 이니셜을 새겨 둔 나무 근처에 스모키를 묻자고 제안했다. RSL 퀸즐랜드가 전한 사연이다. 마지가 떠올린 곳에는 부부의 오랜 추억이 남아 있었다.

투구 속 작은 개를 기억하는 청동상

2005년 11월 11일, 클리블랜드 메트로파크의 로키리버 보호구역에 스모키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졌다. 조각가 수전 바하리가 만든 청동상은 군용 투구 안에 앉은 스모키의 모습이다. 스모키와 여러 전쟁에 참여한 개들을 함께 기리는 작품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으면 비행장 아래 관을 통과한 일이 눈에 들어온다. 끝까지 따라가면 투구에 물을 담아 개를 씻기던 사람, 병원을 함께 찾아가던 윈과 스모키, 나무 곁에 작은 개를 묻자고 제안한 마지의 모습도 보인다.

스모키는 첫 시도에서 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윈은 반대편에서 다시 스모키를 불렀고 스모키는 결국 그에게 도착했다. 관로 작업은 둘의 오랜 동행 가운데 한 장면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윈의 곁에는 스모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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